프로젝트 막바지 기간동안...
check list 수정, 문서작성에 하루하루가 너무나 짧았던 시간동안
얼마나 와보고 싶었던 나의 집인가..?
티스토리에서 알려드립니다!
사용자의 장기적인 미사용으로 본 블로그는 패쇄됩니다!
라는 문구가 대문 앞에 떡 하니 걸려있을 줄 알았고,
내집에 내가 들어가는데도 왠지 모를 낯설음이 몰려 올 지 알았는데
다행히 사실과 달라 한숨을 돌리는 중이다.
술도 먹는 둥 마는 둥 먹고 집으로 달려와
인터넷을 바다에 풍덩 빠질 수 있는 부푼 꿈을 안고 쓰는 포스팅!
옆집 이웃들은 그간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정말 궁금하고
정말로 만들고 싶었던 요리들도 이제는 만들 수 있다.
만들 것이 머리속에 너무 많이 남아돌아
어떤 것부터 만들어야 할 지 정리가 안된다.
정리는 안되었지만
행복하다!
모두들 오겡끼데쓰하시죠?
+2
언젠가 지인들에게
나에게 있어서 행복이란 평범하게 사는 것이다
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당시 나에게 행복함의 기준을 그렇게 이야기했던 이유가 아마...
지금의 내 나이에 견주어서...
남들처럼 평범하게 대학졸업해서
남들처럼 평범하게 안정된 직장에 취직해서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랑을 해서 결혼을 하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자식을 낳아서
남들처럼 평범하게 집장만해가며
남들처럼 평범하게 가족들과 알콩달콩 살아가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삶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그들에게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아마 그때의 생각으로는
우리네 사회가 당연한 기준은 아니지만
당연한 기준처럼 여겨지는 나이의 척도로 그런 생각을 하지않았나 싶다.
그냥 너 나이때는
결혼해서 아이낳고 집장만 해가며 사는거 아니냐는
주위의 압박과 질문에
언젠가부터인지 모르게 평범함이 내가 바라는 행복기준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내가 남들처럼 현재 누리고 있어야할 상황을 가지지 못해
나의 행복은 평범하게 살아가는겁니다 라고 이야기해왔던것 같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내모습을 다시 한번 돌이켜 보건데,
지금 이나이가 될때까지
평범함(행복)을 누릴 수 있는 기회는 분명 나에게도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올 수도 있었던 기회를
내자신 스스로 그 평범함을 원하면서도
내자신과 상대에게 맘의 문을 열지 못해 부인해버렸던 적도 있었고,
현재 시점에서 내가 행복해질수 있는 방법을 알면서도
그냥 시간에 물흘러 가듯이 쳐다만 보고 있다가
기회를 놓쳐버린것 같은 생각이 든다.
술의 기운을 빌어 주절거리는 말이라
맘의 정리는 제대로 안되지만...
말의 요는 평범하게 살아가는것도 행복이지만
나에게 주어졌던 기회를 제대로 잡지 못했었던 푸념과
나의 꿈과 나의 행복을 위해서
바로 이순간 해야될 일의 우선순위와 방법은 지레짐작으로 알고있으면서
원하는 행복을 위해 구체적으로 행하지 못한
나의 모습을 비판하고자 하는 것 같다.
알딸딸~~
오늘 상사분께서 나에게 충고를 해주셨다.
유과장! 당신 요즘 현실에 대한 안주를 하고 있는것 아니야?
당신은 다른사람과 달리 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야.
그게 아니였나봐...
똑바로 보신듯 하다.
최근 나의 모습은 내자신을 그저 그냥 흐르는 물에 물흘러 가듯이
그곳에 내팽겨쳐놓았던 거였다.
결코 나의 꿈은 평범함이 아니라...
평범함 이상인데...
잠시 알면서도 행하지 못했던 모습과
변화를 두려워 했던 내모습이 참으로 우습게만 느껴진다.
큰맘을 먹고,
제일 처음으로 나의 이미지가 어떻냐는 질문을 미니위니 모 동생에게 했다.
여러 사람에게 물어볼려고 했지만...
모 동생으로부터의 의견을 듣고 더이상 남들에게 묻지않았다.
아마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어버릴 문답놀이가 될듯하다..OTL
지금부터 핑계이다.
1. 하체부실에대한 핑계 언젠가 이녀석과 지리산을 함께 등반한적이 있었다.
하산길에 발을 헛디뎌 다리 가랑이 근육이 늘어난적이 있었다.
그래서 이놈과의 하산산행 시간이 약 4~50분이나 났다.
하지만 동생에게 아프다는 말 못했다.
2.야동을 좋아하는 형 한때 야동 매니아였던 어두운(?) 과거가 있었다.
어두웠지만 나름 예술성을 추구한 나였다.
특히, 틴토브라스, 잘만 킹, 봉만대 감독의 작품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작품성을 논하기엔 나의 영화보는 눈은 매우 미약하나...
그들의 작품에 빠져들면 들수록 그들과 다른 더욱더 강한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경지가 되었다.
물론 한때 나의 컴퓨터 하드의 속성을 클릭했을때
다른 누구보다 큰 용량 지켜보노라면 항상 뿌듯한 맘을 가졌을때가 있었다.
그 뿌듯함을 이녀석과 몇몇 사람에게 자랑을 한것이
그들에게 그런 이미지로 낙인찍혀 버린것이다.
하지만...지금은 별로(?) 없다 ㅡㅡ;
그리고 나의 하드디스크는 미국드라와 요리관련 동영상으로 점점 채워져 가고있다
누군가가 첫 나의 모습을 보고 느끼는 각인!
그 각인현상을 다시 한번 나를 되돌아보게한다. OTL
뭐 그럴일은 없겠지만...
만에 하나 저에게 지금까지 좋은 인상을 갖고 계셨던 분들!
저에게 돌을 던지려면 던지세요!
저 이런 놈이였습니다!
문답놀이!
더이상 하기가 꺼려진다.
아마 나의 치부가 들어날까봐 못했던 것이 아니였을까....
비오는 날이었던거 같다.
밖에서 간간히 들려오는 빗소리에 섞여 지나가는 차소리...
지금은 창원이지만 그당시에는 행정구역상 마산이었던걸로 기억한다.
3살부터 19살까지 살았던 내 어린 추억이 서려있는 경남 창원에서의 추억들이 아련히...
"공"자가 생각이 안나서
"엄주공주"할때 "공"이라고 말씀하시는 엄마의 아리따운 목소리...ㅋㅋ
옆에서 들리는 동생나영이의 귀여운 목소리..
그런 동생은 이미 사랑하는 남자랑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려서 이쁘게 살아가고 있다.
엄마옆에서 편지를 써가던 그녀석은
세상 풍파에 찌들어 세상과 힘겹게 현실과 싸움을 해나가고 있으며
나영이와 나를 이뻐라하시면서 애지중지 키워주셨던
어머니는 언제나 우리 남매의 편에서서 항상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있다.
1979년이면 격동기의 시기였다.
박정권 아래서 한창 경제개발이 진행중이었고
얼마 안있으면
무참히 시민의 인권을 밟아가며 새로운 군부세력이 들어섰던 그때..
그런 그때
세상의 찌들었던 모습은 저뒤로 하고
동생과 내가 엄마옆에서
엄마께서 들려주시는 신데렐라 이야기와 엄지공주 이야기를 듣던 그때....
그런 세상의 때가 묻지않은 그때...
다시 돌아가고 싶지만....
내주위에는
음악을 좋아하고,
음악에 심취해있고,
음악에 대한 열정이 강하고,
음악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갖고 계신 사람이 너무나 많다.
하지만..
될성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보면 된다는 말이 있다.
내가 살아가면서 제일 부러운 사람이 있다면 노래를 정말 잘하는 사람이다.
그렇다..사실 나 노래를 잘 못부른다.
단지 못먹는 술먹으면 쇼만 있을 뿐이다...ㅡ,.ㅡ
어렸을적 목소리를 담은 테이프를 엠피삼으로 변환과정중
나의 노래실적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느낌을 받았고,
지금 글쓰는 순간에도 좌절모드로 써나가고 있다.
1979년 8월 16일...
소리를 듣고 상황을 유추해볼때.
엄마와 외할머니 앞에서 샛별유치원에서 배운 노래를
당신들 앞에서 리사이틀을 갖았던거 같다.
노래하는 중간 가사를 까먹는 것이며,,,
끝마무리를 제대로 못하는 것이며,,,
노래하다 잘 안되면 마이크나 상황탓을 하는 것이며,,,
노래하다 곡을 편곡하고 가사를 개사하는 것이며,,
노래하다 딴청을 떠는 것이며,,
노래부르다 어렵다고 포기하는 것이며..(동생은 포기를 모르는 녀석이다. 끝까지 포기하지 말란다!)
어렸을적 이모든 원인을 지금까지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기에
내가 아직도 노래방을 가면 버벅거리는 것 같다.
그렇다!
옛어른들의 말씀 절대로 틀린것이 없다.
될성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
그 리사이틀의 시간을 갖고 몇십년 후...
이제 커서 어른이 되었다.
포기하지 말라면서 옆에서 용기를 불어주었던 동생녀석은
나름대로 성공한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고
내맘대로 내 멋대로 노래를 부르던 나는..
아직도 노래방 가는것을 두려워하며 어둠속 어딘가에서 벌벌 떨고있다.
덜덜덜~~~
오늘 오후 7시
여동생이 싱가폴을 거쳐서 독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그것도 혼자서 말이다.
그것도 남편을 외로이 한국에 놔두고 말이다.
그래서 명절이 되면 가야되는 부산 시댁은 올해는 여행으로 인해 가지않는다.
우리네 사회에서 명절을 코앞에 두고 명절을 끼어 결혼한 여자가 여행을 간다는것은
약간은 받아들이기 힘든 일일 것이다.
하지만
여동생이 유럽여행을 간다고 했을때,
왠만한 남편들이라면 NO라고 외쳤을터인데...
매제의 말 한마디가 나를 감동시킨다.
솔직히 시댁에 계신 시어머니께서도 동생을 무척이나 기다리실터인데
"이번에 못가면 언제 나갈지 모르는데, 보내줘야죠! 그리고 고향에서 음식은 제가 하면되구요"
경상도 남자가 무뚝뚝 하고 약간은 보수적이라고 하지만, 모두 그러하지는 않다는것을 느꼈다.
보이지 않는 와이프에대한 사랑과 꼼꼼함에 더욱더 매제가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물론 동생도 좋은 놈을 만났다는 사실에 감사드린다.
오히려 이번 여행을 계기로 여동생이 앞으로 시댁에도 더욱더 잘 할 것이라 믿어의심치 않는다.
명절이 다가왔다.
아마도 결혼한 여자분들이 제일 힘들어하는 날이 명절일것이다.
차례를 위해 고향으로 찾아오는 분들의 대접을 위해
쉴새없이 음식을 준비한다. 그리고 남자들은 먹는다.
먹지만은 않고 도와주시는 착한 나라 남자 분들도 더러있을 터이지만
대부분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군대시절 음식이라는 것을 배우고
투스타 관사에서 한달에 3~4번씩은 회식준비를 했다.
작게는 3~4명에서 크게는 50명까지의 음식을 혼자서 준비한다.
땀 삐질삐질 흘려가며 장에서 장을 봐오고,
졸라 똥줄타도록 힘들게 음식을 준비한다.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옆에서 준비하는 음식 축내고 있는 장교따위들도 서식한다.
가만히라도 있으면 참을만하다.
도와주지못하고 방해하는 놈들은
관사옆 잔디밭 후미에있는 김장독 묻어놓은곳에 함께 묻어두고 싶었던 심정이었다.
그일이 있은 후,
명절날 시골에 가면 큰엄마, 작은엄마께서 음식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
그 미안한 맘때문에 형들과 고스톱을 치지못한다. 모두들 잠자는 시간에 고스톱을 친다.
그래서 낮에는 큰엄마랑 작은엄마 옆에서 전을 붙이고 고기를 재고, 설거지라도 할려고 한다.
명절 남자들만 즐기라고 있는 날이 아니다.
남자 여자 함께 웃으며 가족들과 즐기는 날이다.
내말이 안믿겨지는
조선시대 고리타분하고 남성우월적인 성향에 빠져 헤엄치고 있는
달려있는 남자분들!
나한테 오면 졸라 빡시게 음식하는 방법을 가르쳐 줄 수 있다.
나에게 돌을 던지려면 던져도 된다.
난 포크레인으로 돌을 퍼서 던져 줄테니까...
암튼 결론은...
나는 매제를 동생만큼 사랑한다.
앞으로 시댁에 더욱더 잘하는 여동생이 될꺼라 믿는다.
나른하지만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오후..
메신저에서 다크거북과의 대화 중 그 녀석이 보내준 URL
그중 여러 가수가 부른 임재범의 고해라는 곡의 동영상...
해당 페이지의 리플을 보면 누가 잘 부르고 못 부른다는 리플이 판을 치지만
누가 더 잘 부르고 못 부르고를 떠나
나에게 있어서는 같은 곡이지만
부르는 사람에 따라 달리 느껴지는 감동이
똥꼬 털이 곤두서는 느낌이 저아래서 빳빳이 느껴진다ㅡㅡ;
일단 듣고 가보자.
<임재범>
<테이>
<이승기>
<SG 워너비 - 김진호>
<The One>
곡들을 듣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든다.
내 입맛은 절대로 까다롭지않다.
무조건 잘 먹는다.
요리를 하는 모임이나 아니면 식당에서 음식을 먹을때
어떻게 조리했는지 맛을 음미하는 편이다.
같은 음식이지만 누가 조리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맛들
같은 재료를 썻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한 맛과는 전혀 다른 환상적인 맛들이 느껴질때...
그럴때마다 나의 좁다란 스킬에 좌절하고 만다.
특히 유명 요리사이트에서 보여지는 컨텐츠들을 볼때,
같은 조리법인데 왜 난 이렇게 만들어 보려고 생각도 못해봤을까?
같은 곡이라도 부르는 사람에 따라 서로 다른 느낌이 나는 음악..
같은 요리라도 조리하는 사람에 따라 서로 다른 느낌의 음식..
아마 내공의 차이에서 오지 않나 두서없이 생각해본다.
많이 아는것처럼 잘하는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저 몇번 해본 경험밖에 없다는것을 제외하면
사실 저 아는것도, 실력도 없다.
무식한 보좌관 : "너두 한번 잡아봐!
원래 개는 한방에 쳐서 보내야 맛이 있는데..
요놈 좀 끈질겨서 제대로 안가네...
한번 너두 쳐봐!!"
정말 개 대신 이놈들을 두들겨 펴주고 싶었지만
눈을 딱 감고 시키는 대로 했다.
개를 잡는 그느낌은 말로 하지 않으련다.
생각조차 하기싫다.
사온 dog는 pass away하고
dog의 hole이라는 hole에는 blood가 too much juice했다.
torch로 hair를 burn하고 wash하고
고기를 바르는 일까지 그놈 일당들이 시키는대로 하고야 말았다.
그것도 화장실을 몇번이나 왔다갔다하면 vomit을 하면서 말이다.
그당시 보신탕은 입에도 대어본적도 없고
먹고싶은 맘도 추호도 없었다.
고기를 삶고 고기맛을 보는것은 무식한 보좌관한테 보라고 하고
나는 맛을 보지 않았다.
저녁 회식이 시작되었다.
투스타 주인아저씨가 모인 손님들에게 자랑을 하고 있다.
주인아저씨 : "(서빙하고있는 나를 가르키며 손님들에게) 이거 이놈이 직접잡은거야!
어때? 맛 괜찮지?" 주인손님들 : "아~~고기 맛 죽이고, 부드러운데....담 복날에도 한번 더 잡지그래" 주인아저씨 : "그래? 맛있긴 맛있나보네..그래 그럼 중복,초복때 한번 더잡지..ㅡㅡ
(서빙하고 있는 나를 보며) 들었지? 유일병? 그때도 준비해"
그렇다.
상급자에게 아부하기위한 무식한 보좌관과
가게매상을 올리려는 한통속 개장수와
나를 탐탁치 못하게 봤던 음흉한 취사병과
남에게 과시하기를 좋아하는 주인아저씨와
몸에 좋은거라면 물불을 안가리는 주인손님들의
중상모략으로 그동안 복날은 맛난거를 먹는 날이구나하고 느꼈던
그 순수한 맘은 여지없이 무너져 버렸고,
그 다음 중복과 말복은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헤쳐나가야 했었고,
관사에서 뛰어놀고 멋모르고 뛰놀던 오골계와 닭들 잡는것 조차 힘들어하던 나는
뜨거운 물만 있으면 눈감고도 잡게되는 신의 경지에
나도 모르게 올라가 있었던 것이었다.
제대한지 10년 가까이 되어간다.
지금 이순간 나보고 그짓을 하라고 시킨다면
군대가 아니기에 이제는 내 의견을 말하면서 열렬히 항거할것이다.
복날이 되면 떠오르는 그날의 기억..
지우려고 해도 이날만 되면 아련히 떠오른다.
그렇면서 며칠전 수육을 먹고 왔다.
이젠 잡지는 못하지만
어디 식당이 수육을 잘하고, 어디 식당이 전골을 맛있게 한다고
알려주는 내 자신을 보면 참으로 아이러니컬하다.
주말 내내 침대위에서 딩굴딩굴 아무런 할일 없이 갚진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우둑우둑 떨어지는 빗소리에 몇번은 자리에서 일어났던것 같다.
TV를 켰다.
전국 여기저기서 호우에 의한 피해상황이 귀에 들려왔다.
매년 겪는 일인데 때만 되면 이런 피해가 계속 속출되는지....
아기꼬북의 말처럼
옛날엔 치수가 국가지도자의 큰 책임 중에 하나였다고 하는데.
자연재해야 사람힘으로는 어쩔수는 없지만,
인적인 측면 또한 무시할수 없는듯하는 생각이 든다.
다스리시는 분들 비오는날 비맞으면서 골프치고 계신가 ㅡㅡ?
각설하고..
좀 아이러니컬한 이야기일수는 있다.
호우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분들이 많이 계시는데..
떨어지는 빗소리에 대한 짧은 단상을 적는 현실이..
언젠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부터
비오는 날이 되면
일하는시간 도중에 잠시 짬을 내어
직장동료들과 커피한잔을 들고
항상 하는 이야기가 있다.
이렇게 비오는 날...
집에서 빗소리 들어가면서
고소한 냄새가 코를 감미롭게 자극시키는
맛난 전을 붙여먹으면서
좋아하는 비디오를 보던가
재미난 만화책을 보고싶다....
생각해보면
얼마나 일상에 찌들어 살아가고 있었으면
우리가 언제부터 빗소리의 향수(?)에 젖어들어가고 있었던 것일까?
사실 나는 비오는 날을 싫어한다.
어렸을적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날이 비오는 날이었기에 그랬을까?
그랬던 나마저도 비오는 날이 되면
그것도 반드시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을때만
이런날 집에서 전이나 붙여서 먹고 싶다는 생각을 꼭한다.
하지만 비오는날
전을 붙여먹으면서 잼난 비됴를 본 기억이 없다.
항상 비만 오면 생각만 한다.
1. 김치는 잘게 썰어서 준비하고, 채소종류는 길이방향으로 썰어서 준비한다.
2. 준비해놓은 재료를 큰 그릇에 함께 모아놓고
3. 밀가루 한컵에 계란2개, 소금, 후추, 간장 약간을 넣고 함께 섞어주자.
4. 물은 계량컵 기준 3/4정도 넣고, 반죽을 해준다....
5. 팬에 기름을 두른 후, 반죽을 팬에 적당량 넣고 앞뒤로 익혀주자..